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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얕은 지식이 아닌 넓고 핵심적이고 참신한 지식
저자/역자
채사장,
출판사명
웨일북 2020
출판년도
2020
독서시작일
2016년 12월 26일
독서종료일
2016년 12월 26일

Contents

이 책의 제목은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넓고 얕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전문분야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를 역사적 순서에따라 겉핥기 식으로 쉽게 설명한 것으로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넓고 얕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발전해 가면서 한가지씩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지 않았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과학, 신학, 문학, 기술, 산업 등 여러가지면이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변화와 발전을 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와 그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그 전부를 한꺼번에 보고 풀이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며 인간의 대표적이면서 거의 모든 관점에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기때문에 넓고 얕은 지식이라기 보다 넓고 핵심적인 지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의 구성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역사’부분이다. 매우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이때까지 이룰수 있었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원시 공산사회 – 고대 노예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자본주의 – 현대로 나누어서 구분을 하고 있다. 역사를 생산수단을 무엇으로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시대를 나누었다는 것이 기존의 역사서와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생산수단을 기준으로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이 역사를 가장 앞에 둠으로서 모든 내용을 역사적으로 풀이하고 역사의 한부분으로 서술해나간다는 느낌이 매우 이해하기 쉬웠으며 가장 참신했다.
 
이제 두번째 챕터인 ‘경제’부분인데 이 챕터 역시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여기서는 경제를 초기자본주의 – 후기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 공산주의로 구분한다. 우선 먼저 설명하자면 초기자본주의는 15세기 봉건말기부터 18세기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의 창립전까지를 말하며 후기자본주의는 1910년부터 1971년까지의 시기로 초기 자본주의의 지배계층인 자본가계층이 전문가 계층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말하며 지배계층의 변화를 일컫는 시기이다. 신자유주의는 석유파동이후부터 현대라고 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는 비록이상이었지만 자본주의의 끝은 공산주의라는 결론을 낸 듯하다.
 
위의 설명처럼 기존의 자본주의와는 많이 다르다. 기존의 자본주의는 애덤스미스를 시작으로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거쳐 이제 자본주의4.0 = 따뜻한 자본주의 시대를 넘어선다고 말하는 이론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경제의 이론은 기존 경제체제를 좀 더 넓고 크게 본 것에 불과하다.
특히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공산주의라는 결론은 공감하지 못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자본주의의 이념자체가 개인이 자유롭게 본인의 부를 축적하는 것인데 이 자본주의의 목적을 모든 사람이 이루게되면 그것이 바로 마지막 자본주의의 모습인 공산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경제를 다른 교과서와는 다르게 이렇게 해석한 것을 보니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세 번째 챕터인 ‘정치’는 매우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과거 정치는 씨족 – 봉건주의(계급사회) – 자유주의(계층사회)로  발전하면서 이루어져 왔다.
현재 정치는 ‘진보’ 아니면 ‘보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현재 자본주의 역시 그렇듯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정치 역시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하는 복잡성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조화로움으로 균형을 잡아야한다. 진보와 보수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상황에 적절하게 그 태도를 바꾸고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챕터인 ‘사회’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로 나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매우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개인보다는 전체에 중심을 둔 부분이 많다. 개인은 조직을 위해서 일하고 개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풍조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나 미디어나 회사 어디든 조직이 더 우세하고 전체적인 것을 따라야 뒤쳐져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체적인 것을 중시한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현재 시국처럼 매주마다 광화문 광장에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합심해 모이고 있는 것처럼 사회 전체적인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에는 정말 효과적이다. 그러나 전체를 중요시하는 것도 좋지만 개인도 존중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킬줄 알아야 진정으로 참된 사회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챕터인 ‘윤리’는 ‘의무론적 윤리설’과 ‘목적론적 윤리설’로 구분한다. 
윤리역시 앞서 말한 것 처럼 과거부터 발전해 왔으며 고대부터 발전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책에서 구분한 것으로 설명하려 한다. ‘의무론적 윤리학’이란 인간의 도덕성은 도덕적 법칙을 준수하려는 의무로서 나타난다고 설명한 것이며 ‘목적론적 윤리학’은 인가의 도덕성은 도덕적 행위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은 태어난 후의 교육에 의하여 선한행동을 할수도 있고 악한행동을 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선한 행동으로 바꾸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의무적으로 도덕성을 느끼고 행동한다면 사회는 이미 매우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의무론적인 행동보다는 목적론적인 윤리가 현재 우리사회에 남아있으며 우리 또한 스스로를 선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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