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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저자/역자
최재봉,
출판사명
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14
출판년도
2014
독서시작일
2015년 06월 22일
독서종료일
2015년 06월 22일

Contents

 

 

 

「천직의 발견」은 서점 한 켠에 잔뜩 쌓인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자기계발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자기계발서가 아무리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 해도 거부감부터 느껴진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대개 그들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이렇게 살면 성공한다.”라는 가치의 문제를 마치 정답인 것처럼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나의 생활방식도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속 문장들은 “너는 틀렸어. 그러니까 지금껏 성공하지 못한거야. 이렇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어”를 외치며, 나의 방식을 무참히 짓밟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도덕책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틀에 박힌 문장들을 실천하며 살아가고는 있는지, 그렇게 살아서 남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하기는 한건지에 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서평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을 나열하는 대신에,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불쾌함에 관하여 토로하고자 한다.

 

우선, 저자는 ‘돈이 곧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깨어있지 못한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며,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다. 내게 있어 행복은, 달콤한 젤리를 사 먹는 것, 가끔은 배낭을 싸들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내가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몇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잘 공부하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젤리를 사 먹는 사소한 일부터 여행을 떠나는 일까지 돈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앞 서 말한 몇 가지의 일들은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일이지만, 이들은 또한 물질적인 풍요가 뒷받침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풍요와 물질적인 풍요는 완전한 독립변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물질적 욕망의 충족과는 무관할 수 있지만, ‘돈’과는 무관할 수 없다. 저자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한 개인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행복을 찾기 위해 매일같이 가족과 함께 있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언젠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과연 무엇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언젠가 외국에서 만난 친구에게서는 “대체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자기나라에 대해서 부정적인거야? 난 이렇게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를 본 적이 없어. 또 한국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얼마나 안락하고 발전된 곳인지 알고 있으며, 나의 나라가 좋고 나의 언어가 좋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렇기에 매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물론, 영어공부가 힘들 때면 언어고립도가 심한 나라에 태어난 것이 때때로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타국에서 한국어는 우리가 아랍어를 접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신비로움과 독특함을 준다는 것을 인식했던 날부터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내 스스로가 좋았고, 내 생각을 전달 할 수 있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으며, 언어가 좋아지니 나라도 좋아졌다. 따라서 이 책은 정말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대한민국이 싫어서 이민을 떠나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나 추천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으로 저자는 ‘몰입’이 행복의 핵심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고도의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서 긍정의 에너지가 발산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고도의 몰입 상태는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대상에만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관심이 없거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긍정의 에너지와는 별개로 몰입상태에 있는 사람을 사회로부터 유리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관심을 둘 수 있는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고,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학문간 융합이 중요한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느라 변화에 빨리빨리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분야의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힐난할 때 ‘외골수’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고도의 몰입상태에 빠진 사람은 외골수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만 옳다고 믿으며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식이 없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들은 한 가지 분야에 관한 지식만으로 그들만의 신념을 구축하고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 각 분야의 저명한 사람이 된다면, 분야 간 의사소통의 장벽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딘가 에서는 분명 서서히 균형상태가 깨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몰입’을 하면 할수록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세상에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이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느라 다른 경험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면서도 머릿속 한 켠에서는 독서가 끝나면 할 일의 목록이 떠나질 않고, 이 일이 끝나면 나는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이걸 못해봤네. 저것도 못해봤어.”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여러 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알지만 다른 악기도 연주해보고 싶고, 한국어를 제외한 3개 국어를 공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언어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스포츠를 즐기는데 있어서도 오늘은 스쿼시를 했으니, 내일은 사격장을 방문하고 싶고, 그 다음 날은 수영, 또 다음날은 골프나 승마를 배워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나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것이 굉장히 괴롭다. 물론 집중이 필요한 순간도 있으며, 때로는 그런 순간들이 바쁜 일상에 지친 내게 안식이 되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한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몰입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행복의 기준은 나 자신이라 말해놓고 몰입하면 행복할 것이라 단정 짓는 것은 모순이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천직이며, 그 일을 찾는다면 더 이상 일은 일이 아니라 놀이일 것이라 말하는 저자의 말은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된다면, 그 일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피아노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그에게 ‘피아노 연주’는 생업의 수단이며 더 이상 취미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취미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기 위해 생업과는 별개로 행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여전히 피아노치기를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름다운 드라마가 아니며,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팔고 있는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만큼 소중하게 아껴두고 싶다. 비록 내 배는 고프지만 그렇다 해서 좋아하는 일을 팔고 싶지 않다. ‘일’과 ‘취미’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일보다는 설사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장 잘하는 일’이 천직이다. 저자는 이를 ‘착각’이라 속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잘하는 일이지만 행복하지 않으면 천직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잘하는 일은 성과를 내기 쉽고, 성과에 따르는 정신적 만족감을 생각한다면 설사 좋아하지는 않는 일일지라도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천직을 자신의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태권도, 미술, 피아노, 영어학원 등을 다니는 것이 적성과 꿈 혹은 재능을 찾는 것과는 원천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이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에 부모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말을 할 수도, 걸을 수도 없다. 이후 성장해가는 과정에서도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것도, 걸음마를 떼는 것도 모두 누군가에게 배워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배워보지 않았는데,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는데 그것이 내 적성인지 아닌지, 재능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 여러 분야를 접해보고 배운다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아닌지를 알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단지 주변사람의 자녀들이 다닌다고 해서 나의 자녀도 학원을 보내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어떤 부모들은 내가 어렸을 때 못해본 경험들을 나의 자녀에게는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아이들을 여러 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 시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다 보면, 훗날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한 가지 정해진 길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경험’이라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며, 이것은 세상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설사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나에게는 이 길이 아닌 다른 일도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이는 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저자는 ‘현재를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동의할 수 없다.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게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래는 막연하고 막막하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잡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데 그걸 꿈도 없고 비전도 없는 실패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어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를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저자는 모르는 것 같다. 온종일 세상 속에서 내 스스로만을 믿으며 살아가다 그 하루가 끝났을 때, 아늑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아. 오늘도 무사히 흘러갔구나.”라는 안전한 기분과 편안함도 행복이다. 비록 내 현실이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고 근근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쨌든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성을 쌓는 것처럼 그 현재들이 모여 내 일생을 만들어져 있겠지.

 

나는 늘 생각하곤 한다.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현재가 행복한 미래가 되어 돌아와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미래를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건 의미가 없는 일로 느껴지며, 애써 정신을 집중해 미래를 떠올려 보려 해도 ‘죽음의 순간’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런 내게 미래의 목표는 딱 하나다. 나의 삶이 끝나는 순간 내가 살아온 일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내게 있어 현재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꽤나 긍정적인 말이다. 적어도 주저앉아 있지는 않다는 뜻이니까. 내가 하는 일이 천직이 아닐지는 몰라도 현재 할 수 있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 역시 내게는 중요한 일이며 훗날 “나는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기에 행복했다”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천직을 찾았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제일 바보 같은 말이다. 그 일이 내 천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을테니까. 이 일이 내 천직이니 죽을 때까지 나는 이 일만 할 것이라 단언하고는 살아가다 어느 순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일을 만나 더 큰 매력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천직’이라는 건 ‘배우자’와 닮아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내 삶의 반려자가 진짜 나의 운명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데 어느 날 어느 순간 더 좋은 진짜 내 인연이 나타날까봐 결혼을 망설이는 미혼자들이 많은 것처럼, 이 일을 천직이라 확신하지만 어느 순간 더 좋은 일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복잡하며, 따라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함을 찾아내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나의 마음가짐을 바꾼다면 그 일이 무엇이든 나의 천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가 정말 내 인연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이 일이 내 천직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가지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천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 생각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불쾌했던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저자와 나는 천직에 대한 정의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가 천직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면, 나에게 있어 천직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천직을 찾을 생각이 없다. 몇 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직업이 무엇이든 나는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은 곧 나의 천직이 될 것이다. 먼 훗날 나의 사후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은 그 일을 참 열심히 했었어. 그 사람은 그 일을 참 잘했었어.” 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내 일을 천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고 내가 목표했던 삶을 이루어낸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나를 ‘타인의 생각에 공감할 줄 모르는 부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논하는데 있어 다른 사람의 눈치는 보지 않기로 한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며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지도 않을 테니까. 내 생각의 오류를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 나름 나쁘지 않다. 그런 과정을 통해 더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될 테니까. 책을 읽을 때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내가 때로는 답답하다.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가 싫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있으며,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반증이니까. 그래서 내게 「천직의 발견」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할 삶의 교과서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를 비판하며 나의 삶의 방식에 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 수단으로써의 제 역할을 다했기에 비판이나 불쾌감과는 별개로 꽤나 생산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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