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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미래
저자/역자
에릭 홀트-히메네스
출판사명
한울아카데미
출판년도
2021-09-24
독서시작일
2022년 11월 07일
독서종료일
2022년 11월 21일

서평내용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현대인은 칼로리 과잉이므로 소식해야 한다. 매체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흔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음식’에 대한 말이다. 이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이 있으니 남겨선 안된다며 꾸지람을 듣거나, 21세기는 영양과잉의 시대므로 음식 섭취를 적당히 줄여 먹어도 된다고들 한다. 어쨌거니와 두 어투 모두 개개인 스스로 자신이 먹을 음식 섭취량을 늘리든 줄이든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반면, 지구 한 편에서는 세계 인구 3분의 1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음식의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유엔식량농업기구는 향후 30년 동안 먹을거리 공급을 70% 늘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역시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연일 힘쓰는 국제 연합 기구다운 행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실에 놀라기는커녕, 수긍하거나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 그냥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유엔이 빈곤에 관한 그래프의 기준과 연도, 포함 범위 등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사람들 앞에서 통계를 눈속임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게다가 세계 빈곤율을 저하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유엔과 세계 지도자들, 슈퍼 기업들의 방향성부터가 잘못됐다면? 이대로 가다간 세계를 먹여살리기는커녕 세계를 파괴한다면 어떤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방책들로 뒤에서 자신의 이익들을 증대해가고 있다면, 주목이 되는가.

이 저자는 기아를 논하며 기아가 골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주요 요지는, 이 원대한 사태의 주범은, 빈곤이다. 나날이 음식을 어떻게 하면 증가시킬지 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음식이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말한다. 음식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이 많아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농부들 역시 가난하므로 음식을 생산하는 그들도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량을 늘리고자 비료나 농약을 거대 기업에서 구매해와 음식을 더 생산하고, 계속 음식값은 하락하고 거대 기업에 의존하게 돼 그들의 배만 배불리 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현상이 모두 자본주의 체계에 기인한 탓임을 밝혔다. 산업적 농업으로 인해 농업 시장을 자본주의가 침식해가, 농업 생태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이다.

기아 극복에 대한 방안이라고 내놓은 녹색혁명이나 GMO는 오히려 생태 파괴범에 불과하다. 국제기구나 국제회의에서 내놓는 방책들이 주장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 진정 지속 가능함에 의문을 제기한 저자는 음식 생산량 증대 자체가 가상의 실재라고 봤다. 최초로 전송된 전 세계 과학자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 이후로부터 25년이 흘러 두 번째 경고를 받은 지금, 과연 인류는 나아졌는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파멸의 길에 치닫고 있다.

혹자는 기아가 인구 증가나 환경오염 때문에 악화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협소한 시각에서 확대해서 본다면 그렇게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저자는 편협한 시각에서, 지배적인 자본주의 논리 하에서만 기아를 논하고 싶진 않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몇십 년간 기아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가 왜 개선되지 않고 악화되었는지를 파고들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뒤로 물러나, 큰 숲을 보자면 기아는 결국 빈곤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세계 기업들과 국제기구들이 수박 겉햝기식으로 내놓은 방안들이 기아를 온전히 해방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다. 애초에 기아, 즉 빈곤은 정치-경제체계 자본주의와 양립 불가한 논리였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빈곤을 해방시킨다는 것 자체가 세계 기업들 차원에서는 부정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접근 방식에서 정치 경제적 권력의 불균형을 기아의 뒤에 그 정체를 숨겼다. 그들의 과업을 강조하고자 그래프를 눈속임하는 국제기구나, 장기적으로 자사 이익 증대를 위해 농업에 투입된 화학물질과 항생제들은 먹을거리의 질을 높이고 농부를 돕는다는 허울 좋은 명분과 취지로 무장해 세계를 속여왔다. 그 실상은 농부들을 채무 속박에 빠뜨리며, 그들로 하여금 악순환의 고리에 빠뜨린, 기아 종속의 주범인데 말이다.

어쩌면 그들 역시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창조적 파괴는 불가피하게도 자본주의 농업의 딜레마이다. 농부들의 자구책으로 나온 농업 생태학을 저지하는 것이 자본주의 농업이듯, 농부들은 자본주의의 기업가적 발전 동력에 의해 농락당하고 기만당했다. 먹을거리 주권을 주창하는 대항운동의 물결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구조와 직결되어 있기에, 자본주의 논리에 의거하면 이 대항운동은 소거 대상이다.

누군가는 이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반기요, 패배주의적인 반론에 불과하다고 일컫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방향을 수정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정으론 부족하다. 방향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독점 체제도, 농업 방식도 모두 변화 대상이다. 정정이 아니라면 변혁이다. 그렇다면, 몇십 년간 이렇게 고착화되어온,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이 자본주의 농업 흐름을 어찌 멈출 수 있는가? 누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먹여 살릴 수 있는가?

농업 생태학을 파괴한 것이 인류이듯, 농업 생태학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인류이다. 하지만 이 첨예한 자본주의 체계 하에서 개개인의 구조 변혁 운동은 힘이 없다. 쌓아온 허구의 상상은 그간 많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그들을 길들였다. 개개인으론 역부족이기에, 많은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들의 대항운동이 전 세계에서 대거 발현돼, 세계를 물들여야 한다.

저자는 이 거대한 움직임의 물꼬를 트는 것이 이 책이었음을 바라는 희망을 담아 집필했다고 한다. 환경 사회적 비용을 먹을거리 가격에 내부화한다든지,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하고 생산 쿼터를 보장하자, 과잉생산을 종말하고 화학 투입물을 감소하자, 농업 화학물질 독점체 권력을 해체하고 농업 생태계를 회복하자 등의 나름의 방책들을 고심 끝에 써 내려갔다. 어쩌면 너무나 이상적이고 다소 실현 불가능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 바꿔나간다. 어디 루이 16세도 왕위에 오르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이나 했겠는가. 처형으로 생을 마감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어디 그런 상상이 가당키나 한 시대였는가. 사회운동은 빠른 시일 내 벌어지지 않는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계 내에서 안온히 제각기 삶을 영위해온 인류가 이를 변혁하고자 대항하는 것은 급속한 속도로 발생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발점은 이미 싹을 틔웠다. 이 사회운동의 발화점을 넘기 위해, 사랑해 마지않는 지구와 인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의 번뇌와 번민이 이 책으로 인해 시작됐다,

저자는 진보 세력과 연대해 먹을거리 운동을 단결해야 한다며, 인류의 과업으로 세계 먹을거리 감소를 제시했다. 또, 사회운동은 행동주의와 생계가 하나로 통합될 때 성공한다고 밝혔다. 과연 이 시기가 언제 도래할지, 도래하긴 할지 불확실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에 불과하지만, 저자와 함께 나 역시 간절히 바래본다.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전 세계를 메워 함께 바꿔나갈 나날들을 기다리며, 이 서평을 통해서도 저 너머 어딘가 우리와 손을 맞잡을 이들이 있으리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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