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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쾌락’을 택한 한 남자의 이야기
저자/역자
배경식
출판사명
휴머니스트
출판년도
2015-11-30
독서시작일
2022년 08월 03일
독서종료일
2022년 08월 17일

서평내용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아직까지 천황도 죽이지 못했소?”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무실에 울린 이봉창의 한 마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는 민족 수난기, 소위 일제 강점기라고 불린다. 일본이 무단통치를 펼친 1910년대, 3.1운동을 계기로 문화통치를 펼쳤던 1920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193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침략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민족말살통치 시기에도 자잘한 독립운동은 있었다. 하지만 이봉창처럼 천황을 죽인다는 거침없는 생각을 한 사람도, 실천한 사람도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일제 강점기 35년의 시기 중 천황 살해를 실행에 옮긴 유일한 조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기를 살아가던 청년 이봉창은 어째서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생각을 했을까? 그가 살고 있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이러한 궁금증들을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이라는 책으로 풀어내고 이봉창이라는 인물의 천황 의거의 자세한 내면을 알리고자 하였다.

책을 쓴 저자 배경식은 석사과정 때부터 한국현대사를 공부했고,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대중적인 역사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는 사회와 독자의 환경에 뿌리내리는 출판사”를 지향한다고 밝힌 ‘휴머니스트’를 통해 “이봉창이라는 독립 영웅 이야기를 통해, 국가의 공식 기록에 의해 박제된 독립운동사를 넘어서 인간의 역사로서의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복원하고자 한다.”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였다. 책의 표지를 살펴보면 한문으로 된 글이 보인다. 이는 이봉창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사진을 찍을 때 들고 있던 한인애국단 선언문(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이다. 선언문을 들고 있는 같은 표정을 한 인물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사람이 이봉창이다.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는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그는 어떻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필자는 1932년 1월 8일 운명의 그 날 천황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그의 삶에 대해 살펴보았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던 조선인 이봉창의 모습

이봉창은 1910년에 용산에서 태어나 15살에 과자가게 점원으로 취직했으나,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약국으로 직장을 옮겼다. 일본인 상점에 취직해서 일하며 일본어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되었던 것은 그가 일본행을 결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이봉창은 용산역 조차계(전철원)로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하여간 돌대가리라도 일본인으로 태어나야 한다니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무리 머리가 좋은 조선인일지라도 일본인들보다 승진 부분에서 차별이 일상화된 곳이었다. 일제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을 제도화했으며 일제 강점기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 ‘민족 신분’으로 차등화된 또 하나의 불평등 사회였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은 식민지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민족차별은 식민지의 본질이었고, 식민지에서 민족차별이 없어지는 순간 식민 본국 사람들은 식민지에 대한 목표가 사라지게 되므로 일제는 일본인과 조선인은 다르다는 것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때문에 이봉창은 불행히도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체념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문장을 보고 조선인으로 태어난 것을 불행히 여기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고,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힘듦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어진 것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렇게 차별 대우에 힘들어하던 이봉창은 불만을 품고 사직서를 내긴 했으나, 현실을 인정하고 일본의 식민 정책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이봉창은 희망 없는 조선의 현실 앞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택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기노시타 쇼죠’라는 일본 이름으로 살며 일본 천황의 백성임이라 생각하고 살았으나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현실은 이봉창에게 너무 서글프게 다가왔다. 전전긍긍하며 일자리를 구하며 삶을 연맹하던 그는 천황의 즉위식을 보러 가기 위해 검문을 받던 중, 한글로 된 편지로 인해 며칠을 유치장에 갇혀 있게 된다. 이봉창은 이 일을 통해 결국 자신이 조선인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그는 상하이로 가면 떳떳하게 조선인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희망과 불안을 안은 채 상하이로 향한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 김구와의 만남

이봉창이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갔을 때 임시정부는 재정 부족으로 허덕이던 상황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단체임은 모른 채,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하지 못하면 취직이 어렵다는 답변만 듣게 된다. 이에 현실의 벽에 막힌 이봉창은 ‘상하이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남은 평생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간 임시정부에서 술을 마시던 이봉창은 독립단원들에게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아직까지 천황도 죽이지 못했소?”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러한 호기로운 들은 김구는 그가 침체된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그와 만난다. 이봉창은 김구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그동안 즐겼던 육신의 쾌락이 아닌 조국의 독립이라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살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는 일을 시행하고자 결심했음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재정난이 심각했기에 즉시 이봉창을 지원해 줄 여력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김구는 이봉창에게 어떻게든 폭탄과 자금을 마련해줄 테니 기다려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김구와 임시정부는 완바오 산 사건과 만주사변을 통해 외교 노선을 고집해오던 태도에서 폭렬 행동으로 전환하였었다. 김구는 약소민족의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의열 투쟁을 선택했으며, 이봉창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희생자를 파견하여 반드시 독립운동사에 절망적이던 ‘암흑의 시기’ 꺼진 독립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폭탄을 구하고 재정지원을 호소하는 편지들을 돌리며 거사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마련에 성공하였는데 폭탄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던 이봉창과는 달리, 김구는 자신을 믿고 성능을 믿어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김구를 믿고 폭탄의 사용법 등을 익히며 이봉창은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이즈음 김구는 한중(韓中) 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일본 요인과 시설을 공격하는 특수공작 임무를 수행할 비밀조직으로 임시정부 산하 비밀결사대인 한인애국단을 결성한다. 그리고 이봉창은 한인애국단의 최선봉에 선,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어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마친다. 폭탄이 들키지 않도록 사타구니에 꼭꼭 숨긴 채, 그는 ‘영원한 쾌락’이라는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유일한 조선인이 되다

일본에 도착한 이봉창은 전보를 통해 1월 8일을 거사날로 잡았음을 김구에게 알린다. 거사날 이틀 전, 그는 사전답사를 위해 탄 택시에서 일본 헌병의 명함을 받게 된다. 거사 당일, 관병식을 놓쳐 거사에 실패하는 줄 알았으나 명함 덕분에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고 쉽게 천황 폐하의 행렬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수많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간 이봉창은 두 번째 마차에 타고 있는 이가 천황이라고 성급하게 확신한 후 수류탄을 꺼내 마차를 향해 겨냥하였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소란스러워졌고, 이봉창은 자신이 거사에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을 뿐, 수류탄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불량탄이었던 것이다. 이봉창은 일본 경찰들에게 잡혀가면서 수류탄이 제대로 터지지 못해 거사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 김구가 원망스러웠지만, 자신의 천황 폭살 의거가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으킨 만주 의거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이봉창이 폭탄을 던졌다는 일은 일본으로서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고, 일본의 식민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결국 그는 사형당했지만, 이봉창의 희생은 꺼져 가던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독립운동의 불길을 지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에서는 보통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과 그 인물의 업적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배우기에, 한 사람이 어쩌다가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내면을 자세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이봉창이라는 인물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기까지 어떠한 내막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려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책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다짐한 그의 태도와 의지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큰 거사를 앞두고 여느 사람과 다를 것 없이 긴장하고 걱정 가득하여 우울했던 모습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웃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책에 대해 칭찬할만한 또 다른 점은 독립운동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간 이봉창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서 어떠한 일을 했다고만 서술하며 영웅적인 면만 묘사하는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기를 살아가던 청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받아들이며 천황의 백성이 되고자 노력했던 모습에서, 결국 현실의 벽과 마주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모습은 이봉창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의 삶의 변화를 대표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위인적인 모습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현실적인 한 인간의 모습도 보여준 점에서 독자들이 이봉창에 대해 더 공감하고 자신이 이봉창이라면 어땠을지 대입해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작가도 말했듯이, 일본에서 이봉창의 삶은 많은 역사적 자료를 통해 정보를 얻기 수월했으나, 상하이에서 이봉창의 삶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다. 어떤 역사적 사실의 가정에 관한 글이면 항상 따라오는 ‘만약에’라는 말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기에 이러한 가정을 세운다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하지만 필자는 이봉창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만약에 이봉창이 김구에게 적어준 이력서 말고, 그가 직접 수기로 적다가 버린 자료가 발견되었다면, 만약 그가 그것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세상에 밝혀졌다면 우리가 이봉창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하였다. 또한 거사를 치르기 전에 날짜별로 상세히 서술한 점은 좋았지만, 굳이 돈이 필요하다고 전보를 부치고 기다리는 내용을 그렇게 많이 넣었어야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만큼 자금을 맘껏 보내줄 여력이 되지 않고 이봉창이 거사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과정을 묘사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천황 의거를 서술하기 전 너무 내용을 끌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남자의 삶을 인간적으로 서술한 책의 구성은 다시 한번 칭찬할 만하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이봉창 말고 다른 역사적 인물, 독립운동가에 대해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기에 말이다.

우리는 현재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독립을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자유를 느끼기까지,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이봉창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들로 인해 조선이 바로 독립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이 모여 세상에 독립을 위해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 그리고 그저 식민지에 순응하고 산 사람들이 아닌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민족의 모습도 있었다는 걸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을 읽고 강점당한 35년 중 유일하게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남자, 이봉창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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