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감성이 고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저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시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매일 보고 지나쳤던 무언가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힘 말이다. 이 책은 도종환, 나태주, 정호승, 윤동주, 김수영 시인의 시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시부터 처음 보는 시까지 다양한 시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풀꽃, 멀리선 빈다, 너에게, 서시, 풀과 같이 마음 따뜻해지고 또 마음 저린 시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은은함에 대하여\\\\\\\’ 라는 시를 꼭 소개하고 싶다.
은은함에 대하여_ 도종환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들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문득, 나도 이런 은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를 소리내 읽으며 은은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는데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정도와 타인의 의견을 잘 듣는 능력이 비슷해야 하듯이 은은함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만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시들이 참 많았다. 단어 하나하나에, 행간 하나하나에 그 뜻이 숨어있는 또는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시는 그래서 만인의 안식처인가 보다.
지금 내 상황이 힘에 부칠 때, 마음을 다쳤을 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을 때, 감성이 매말랐을 때, 지루할 때 그 밖의 많은 상황에서 시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준다. 가르치려 들지 않으며 아주 찬찬히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2021년과 작별하는 저녁, 마음이 싱숭생숭한 오늘 밤, 시 한 편 읽으며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