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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것들이 주는 '평범하지 않은' 역사
저자/역자
박건호,
출판사명
휴머니스트 2020
출판년도
2020
독서시작일
2021년 10월 22일
독서종료일
2021년 10월 22일

서평내용

왜 역사를 수집할까?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는 저자 박건호가 수집한 역사의 조각들에 대한 소개와 그 조각들과 나누는 작가의 대화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익숙하지 않을 많은 역사의 파편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실종자 조용익을 찾는 훈령, 김남두가 고향에 보낸 엽서, 콜레라로 인한 학생 귀향 명령 증명서, 한국전쟁 중 차영근의 전시수첩, 포로수용소에서 온 편지, 한국전쟁 중 육상경기대회 기념사진, 태극기기 걸린 결혼사진, 경기 중학교 김장환의 일기장”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수집한다는 일이 과연 쉽게 ‘취미’로 가질 만한 일일 수 있을까. 무언가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을 위해 그것만큼의 가치를 지불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도대체 저자는 왜 이런 취미를, 그리고 왜 하필 역사를 ‘모으는’ 컬렉터가 된 것인지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는 그 자체로 저자가 하는 ‘수집’에 대한 가치와 저자의 이유를 알게 한다. 그리고 저자가 수집한 여러 물건들을 소개 받다 보면, 그 중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것에 눈길이 간다. 그럴 때면 ‘수집’뿐만 아니라 ‘기록’, ‘기억’과 같은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또, 작가가 역사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이제껏 유심히 보지 못했던 역사의 한 귀퉁이 혹은 그 중심에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던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다.

‘수집’, ‘기록’, ‘기억’의 가치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작가 박건호가 ‘수집’한 것들은 언뜻 보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일기이고, 누군가가 찍은 사진이고, 어느 누구의 사직서이고, 사인이고, 편지였다. 이런 물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끼적이는 일기, 분명 수백 장은 찍었을 사진, 또 누군가에게 언젠가 보냈던 편지처럼 작가가 수집한 다수의 물건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평범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평범한’ 것이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품은 것으로 소개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까.

어떤 평범할 뿐인 과거의 무언가가 ‘역사’가 되는 일반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소개되는 물건들은 저자가 이들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기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누군가의 ‘일기’와 ‘사진’, ‘편지’ 그리고 ‘사직서’에서까지 역사의 이야기를 찾아냈고 그런 과정은 어떤 시대의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물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렇게 하나의 물건을 보고, 단서를 찾아서 역사를 ‘역추적’ 해가는 그 과정에서 오는 감동과 쾌감이 컬렉터가 가지는 매력적인 것 같다. 컬렉터의 또 다른 이름은 과거의 어떤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한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이 아닐까.

수집되어진 물건들을 보고, 어떤 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과 기억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수집되지 않는’ 물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전에 저자가 출연한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완용의 필체’가 적힌 종이는 아주 값싼 가격에 경매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모든 과거의 유산들이 다 같은 가치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치가 매겨지는 것들 중에서 ‘가치 없다’고 여겨지고, 때문에 기억되지 않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 하게 됐다. 중요한 기억과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모를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으로 만난 여러 물건들도 우리가 관심 없이 지나쳤을 ‘어떤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가려져 있었던 ‘평범한’ 것 속의 이야기와, 역사와의 관계들을 들춰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사 너머의 역사”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정치사 중심으로 특정 시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사실 생각해보면 역사를 가장 많이 알게 되는 교과서에서부터 그렇다. 그 당시의 정세와 어떤 정치구조는 중요하게 다루지만, 사회문화의 주제는 간단하게 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조차 문화유산이나 그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몇 가지의 특징을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역사를 공부했지만 정작 그 사회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역사적인 사건들과 그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한 몇몇의 인물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역사이든 간에 “그 속에도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정치사에 가리어진 역사 속의 주체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강점, 해방, 전쟁 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어떤 한 가지의 일반화된 모습으로 그려질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상상해보자면,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핍박받았고, 해방 당시에는 모두 행복하고 기뻐했으며, 전쟁 속에서는 모두 고통 속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이 있고, 이 책에서 또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제의 강점 속에서 그 어느 편에도 있지 않은 채 그저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해방이 되었어도 그것의 기쁨보다 역병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불안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잔혹하고 끔찍하기만 할 전쟁 속에 살더라도 그 안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본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은 그 때의 ‘현실’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해방이 되었는데도 기쁘지 않았고, 전쟁 중인데도 육상대회가 있고 꽃장수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분명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부조화를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런 것이야 말로 역사인 것일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단순하지 않고, 그 안에 수많은 주체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 때문에 어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 말이다. 강점이든, 해방이든, 전쟁이든 말이다. “역사의 속살은 단순하지 않을 뿐더러, 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무엇보다 공감되었다.

이렇듯, 생각해왔던 역사 그 너머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었다면, 동시에 그 시대를 보다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도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사람들은 현실 정치와 무관하게 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에 영향을 받는 모습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에 적은 일기에서, 대통령과 정세에 대한 한 개인의 시선이 묻어나는 일기에서, 태극기가 커다랗게 찍힌 결혼식 사진과 같은 것에서 그때의 현실을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사진 한 장에 그 시대의 이야기가, 그리고 민중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긴 삶을 담기에 사진은 한 장 뿐이고, 일기는 끊겨 있을 때가 많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뒷내용’이 없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곤 한다. 이렇게 작은 역사의 조각들을 남긴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하는 것이다. 물론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니겠지만, 이런 생각들이 이때까지 배워오던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는 한다. 그저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어도 역시 생생하게 남는 건 사진인 듯하다. 사진은 순간의 기록을 어떠한 거짓과 과장, 축소 없이 남겨준다. 또 편지와 일기도 일상적이거나 하는 하루의 기록일 수 있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또 다른 하나의 매개로서 작동할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할 때 그 시대 속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이 남긴 평범한 물건 속이다. 이미 이 세상엔 없는 사람들의 물건들의 조각에서 우연히 역사를 발견하게 되고, 그 역사는 그저 알고 있던 역사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그 너머의 것이고, 그 안 깊숙이 가려져 있던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저자가 과거의 유산들을 대하는 형태에서 또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저자는 이름과 얼굴을 잘 모르는 그저 그 시대를 살았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과거의 것을 대했다. 하나의 물건을 보고 던지는 질문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진을 발견했다면 이 사진은 언제, 누가, 왜,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질문한다. 만약 ‘언제’의 답을 찾았다면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그 사진을 해석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자가 과거의 유산을 대하는 태도는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려는 사람이 가지면 좋을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과거의 것에 대해 ‘언제부터?’, 그리고 ‘왜?’라고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다 즐겁고 의미 있게 공부하게 되는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왜 역사를 수집하는 것일까? 한 개인으로서 역사를 ‘수집’하고 이를 소개한 이 책을 통해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수집이나 역사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역사 수집’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게 들렸으나 생각해보면 역사를 ‘수집’한다는 것은 그렇게 멀리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수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단순히 어떠한 대상을 모으는 행위로 넓게 생각해보면, 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과거의 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보관하고, 보호 및 관리하는 것도 역사를 모은 ‘수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또한 굳이 수집이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과거의 조각들을 찾고, 모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누군가가 수집한 것들을 통해 사람들은 살아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시대의 변화는 그 당시의 물건들에 나타난다. “문화와 관습은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라는 책을 통해 저자는 ‘그 흔적’들을 보여준다. 때로는 역사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하게 하고, 때론 그 당시를 생생히 보여주고, 또 보이지 않던 ‘사람’의 모습들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단순히 역사의 ‘일반적인’ 면만을 공부한다면, 그것만의 역사는 단조로워 질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것은 한 가지의 모습만 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조금 더 다양한 면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시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과거의 물건들이라고 생각한다. 100여 년 전의 성적표, 일기장, 사진, 편지는 그 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느끼게 한다. 그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관심이 가게 되고,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살아간 그 시대를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컬렉터의 수집으로 모아지고 저자의 눈과 입을 통해 목소리를 가지게 된 역사의 조각들이,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있었던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생기를 보여준다. 무심코 모르고 넘어갔을 지도 모르는 ‘평범한’ 것이 들려주는 역사를, 한국의 근현대사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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