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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오월’,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저자/역자
김상윤
출판사명
한겨레출판사
출판년도
2019-04-30
독서시작일
2021년 10월 01일
독서종료일
2021년 10월 02일

서평내용

민주화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들

『녹두서점의 오월』은 ‘5.18’당시 녹두서점이라는 장소의 역할과 그곳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적인 한 사건을 대중들이 알기 쉽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

최근 『소년이 온다』라는 한강의 장편소설이나, 장훈감독의 <택시운전사> 그리고 『녹두서점의 오월』까지 ‘5.18’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했다. 그만큼 관련된 많은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5.18’이라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그것들의 공통된 커다란 주제는 ‘광주 기억하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광주의 오월’을 기억할 때 각각의 콘텐츠가 초점을 맞춘 기억할 ‘무엇’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비교하자면 영화 <택시운전사>는 외신기자가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로 알리는 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었고 그것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녹두서점의 오월』에서는 그것보다는 ‘5.18’에는 광주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민주화를, 광주의 ‘5월’을 기억하는 책임과 동시에 그와 관련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5.18은 왜 5.18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5.18의 중심, 그 주체는 누구였는가.’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 번 1980년, 광주를 기억할 수 있었다.

5.18은 왜 ‘5.18’인가

요즘 역사적인 사건의 이름에 붙이는 ‘명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는 기회들이 많았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기했던 것인지 『녹두서점의 오월』의 소재가 된 ‘5.18’의 명칭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에서는 ‘5.18항쟁’, ‘5.18’, ‘광주사태’, ’5.18민중항쟁’같은 다양한 명칭이 등장했으나 대체로 ‘5.18’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생각해서 나 또한 이 글에서 ‘5.18’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때까지 내가 그 사건을 불러왔던 이름과 배웠던 이름은 무엇인지 또한 앞으로 어떻게 부르는 것이 적합할 지 고민해보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그리고 입에 익숙해 진 명칭은 ‘광주 민주화 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또는 ‘5.18 민주화 운동’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5.18’이라는 날짜와 ‘광주’라는 지역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 사건의 특징과 의미를 나타내는 것에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5월 18일이라는 날짜가 의미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녹두서점의 오월』이 보여주는 기록에서 광주의 ‘5.18’은 그 하루로만 설명될 수도 없고 단순히 18일에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사건의 처음이고 끝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광주의 ‘민주화 운동’은 ‘5월 18일’ 하루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5월 18일이 아니라 그 사건 전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 광주라는 지역이름을 빼고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용어도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역시 ‘광주’가 그 명칭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광주가 국가권력에 의한, 언론에 의한 ‘고립’과 ‘단절’ 속에 있었고 적어도 그 당시 광주에서의 사건은 ‘광주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 사건에 있어서 광주의 지역성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책 속에서 “5.18은 어디까지나 광주 사람들, ‘우리들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라는 문장을 봤다. 그래서인지 혹시 나의 생각이 ‘5.18’을 광주만의 이야기로 치부해버린 것일까. 광주를 ‘우리’에서 배제한 생각을 한 것일까. 하는 걱정이 됐다. 그러나 ‘5.18’이 ‘광주’의 이야기였음을 명칭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5.18은 우리의 이야기이니 우리는 우리의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 정도의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과한 공동체적인 또는 감성에 빠진 생각인걸까.

민주화 ‘운동’일까, ‘항쟁’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그래서 결국 어떤 명칭이 이 사건을, ‘광주의 오월’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는 것이 부족해 어떠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녹두서점의 오월』은 적어도 나에게 ‘5.18’은 정말 ‘5월 18일의 사건’이기만 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국가와 언론에 대한 경계와 의심

시민들이 시민군이 되고 총을 다룰 줄 모르던 어린 학생들도 ‘총’을 들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의 총구가 국민들을 향했다는 것이 참 답답하고 잔인했다. 그날, 그때, 광주에 있었던 군인과 그들이 가진 총알은 모두 몇이나 되었을까. 국가는 왜 국민을 죽였을까.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종국에 다다른 질문은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많이 들어봤고 그렇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없다. 역시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또는 공권력에 대해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이 필요함을 아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는 것은 알 것 같다.

『녹두서점의 오월』을 통해 나는 ‘5.18’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었지만 동시에 미약했지만 조금 떨어져서 그 사건에 함께 놓인 여러 주체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미국은 ‘5.18’에 대해 어떤 입장에 있었던 것인지, 정부가 이 ‘사태’를 왜 그렇게 ‘해결’하려고 했는지, 언론이 감추고 숨기려 한 ‘진실’은 무엇이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같은 여러 질문을 던져보다 ‘국가’와 ‘군대’ 그리고 ‘국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가’와 ‘언론’의 관계이다. ‘5.18’이라는 사건에서 ‘언론’은 ‘국가’가 광주를 고립되게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 주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언론 등의 보도를 통해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전해야 하는 언론의 기능이 무력화되었고 광주는 고립과 단절을 경험해야 했다.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무력감을 생각하다 ‘5.18’ 이후 현재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과연 지금 우리사회에는 또 다른 ‘광주’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국가와 언론의 눈가림에 그저 수긍한 채 눈을 감고 있지는 않는가. 떠오른 질문들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지 않다고 확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더 이상의 ‘광주’는 없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광주’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가장 뚜렷이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국가와 언론의 행보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의 중심에 있었던 이름에게

『녹두서점의 오월』에서 사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비어있던 ‘이름들’을 발견한 것이다. 민주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건들을 떠올릴 때 쉽게 떠오르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을 떠올렸으니 ‘그 당시’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나는 민주화운동을 곧 지식인들의 운동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다양한 주체들의 움직임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그들을 주류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민주화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과연 대학생 등의 지식인들이었는지, 그리고 단순히 하나의 주체들이 어떤 사건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녹두서점의 오월』은 민주화의 중심은 지식인 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기층민중’이라고 말해준다.

대학생, 중·고등학생, 남성, 여성, 종교인, 시민군 그리고 거리 상가의 상인들까지(이 밖에도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5.18’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은 ‘비주류’로, ‘5.18’이란 사건에서의 한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주체적인 것으로 기록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없이는 ‘5.18’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움직임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 ‘주체’라 함은 누구인지, 그들은 왜 ‘5.18’에 있었는지, ‘5.18’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 또 생각하는 것은 분명 ‘5.18’ 이라는 사건을 이해하는 것에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나는 『녹두서점의 오월』에서 ‘여성’이라는 주체를 발견한 것이 참 반가웠다. 그들이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역사 안에서 여성이 나름의 중요한 위치에서 움직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기에 그러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또한 단순히 하나의 ‘영웅적인’ 여성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현애, 정현순, 김현주, 이명자, 운경자, 정유아, 이영자, 전춘심’ 등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최선을 보여준 여성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묻혀 있던 이름들”을 기억하는 것으로써의 이 책의 의미가 더욱 빛났다고 생각한다.

광주 그리고 ‘5.18’ 기억하기

『녹두서점의 오월』과 같은 ‘5.18’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은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새로운 주체를 등장시키고 부각시켰다는 점에 있다. ‘녹두서점’이라는 장소가 그 당시 광주의 주체들에게 어떤 것이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많은 이들이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5.18’ 이후 광주의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을 위해 또 다시 힘든 여정을 버텨내야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꼭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5.18’을 기억하는 그에 관한 또 다른 콘텐츠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있거나 이전의 것과 비슷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주체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녹두서점의 오월』을 읽고 ‘5.18’의 명칭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국가와 ’언론‘에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기층민중들 그리고 ’여성‘이라는 주체를 발견하게 된 것은 여러 형태의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다르게 ’5.18‘의 광주를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며 폄훼하는 ’기억‘들도 있다. ’광주의 오월‘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것을 정확한 ’사실‘로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5월의 광주‘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 중에서 또 하나의 주체를 발견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는 『녹두서점의 오월』은 ’광주 그리고 ‘5.18’ 기억하기‘의 첫 출발점이 되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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