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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비평하다
도서명
저자/역자
이영준
출판사명
워크룸프레스
출판년도
2019-02-15
독서시작일
2021년 08월 25일
독서종료일
2021년 08월 25일

서평내용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 마르셀 뒤샹이 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에 다녀와서 그의 친구에게 한 이야기다. 그의 작품과 그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 혼란스럽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했던 물건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이상 작품과 사물 그 자체를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들의 보이지 않는 뒷면, 즉 작가의 숨은 의도, 그 작품의 배경 같은 가려진 것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선 너머를 보기 위해, 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평론가들의 눈을 빌려서 작품과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처럼 전통예술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은 똑같이 평론의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해외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음은 확실하다. 기계비평가 \”이영준\”에 의해서 말이다. \”기계비평\” 사실 그 이름부터 어색하다. \’비평은 문학,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과 어울리는 단어인데 차디차고 딱딱한 기계와 접목을 한다고?\’ 라는 의문점이 드는 것이 정상이다. 이것은 안타깝게 기계의 앞모습만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의 앞모습인 기계의 디자인과 용도에만 바라보면서 그 내부와 작동원리에 무관심하다. KTX는 시간 단축을 위한 운송수단이기에 그 소리와 진동을 감추는 무수한 시설과 더 빠른 속도를 위해 공기역학에 유리하게 디자인된 외부만 중요하다. 300km이상의 속도로 가는 이 거대한 기계가 가져다준 문명사학적 의미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책에서 기계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 사이에 생긴 변증법적 산물, 자연과 인간이 대결을 하며 변화되고 서로 변화되는 그 매개체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어떤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순간 기존의 패러다임은 곧바로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그 생명을 잃으며 새로움에 종속된다. 자연이든, 기술이든 항상 새로운 기계가 탄생되면 그 탄생의 재료가 된다. 공간을 지배하여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비행기, 기차, 자동차와 같은 좁은 공간에 몸을 끼워 넣었고 시간을 지배하여 더 빠르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도 역설적으로 그 준비과정에 엄청난 시간을 사용한다.

공간과 시간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이러한 것을 다룬 철학자가 바로 \”질 들뢰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도 들뢰즈 책들의 인용이 많이 나온다. 우선 들뢰즈의 인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매끈한 공간\”과 \”홈 파인 공간\”이라는 단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한 쪽은 홈이 파여 있고 다른 쪽은 매끈한 판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거기에 물을 부어보자. 당연히 홈이 파인 부분에선 물이 그 홈을 따라 흐를 것이고 매끈한 부분에선 물은 사방으로 자유롭게 흘러갈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매끈한 공간\”은 아무런 규칙과 질서 없이 사방으로 열린 무규정의 공간인 반면에 \”홈 파인 공간\”은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있는 규정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지구의 절대적인 면적을 차지하는 바다와 사실상 면적이 무한한 하늘이다. 이 매끈한 공간들은 홈 파임의 요구에 가장 빠르게 직면한 것이다. 바다와 하늘 같이 자유로운 공간에 질서와 규칙을 부여한 것이 바로 거대한 배와 비행기다. 따라서 감히 배와 비행기와 같은 것들은 탈영토화를 이끌어낸 존재라고 볼 수 있다라는 이러한 시각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기계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문명사학적인 사실들을 다양한 철학적 담론을 통해 보여주는 메타 담론에 대한 것이다.

내 능력이 안 돼서 성급하게 마무리하겠다. 문학, 음악, 미술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 많은 평론과 비평을 찾아봐야하듯이 우리의 가장 가까이 있는 기계들의 이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도 이러한 비평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기계의 작동원리와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기계비평이 늘어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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