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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기억과 물고기 비늘을 바꿀 것인가?
도서명
저자/역자
김성중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5-02-25
독서시작일
2021년 03월 09일
독서종료일
2021년 04월 30일

서평내용

<국경시장>은 액자 식 구성으로 바깥이야기와 속 이야기가 존재한다. 바깥이야기는 N국과 P국이 존재하고 영사관인 ‘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가 국경시장 이야기를 언급하며 내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화 이야기는 국경시장에서 일어난 일로 ‘남자’, ‘로나’, ‘주코’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국경시장 내에서는 화폐를 사용할 수 없고 15세 미만 소년들만 채취가능한 물고기 비늘이 화폐의 역할을 대신한다. 성인이 물고기 비늘을 사려면 자신의 기억을 팔아야만 한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노란 가루는 내화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마약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남자의 상태가 반미치광이 상태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몸에 상처가 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마약을 하다가 잡혀온 사람인 줄 알았다. 심지어 남자가 잡혀온 공간이 마약상들이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한 강이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마약을 하다가 걸린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렇게 외화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내화 이야기로 이어진다. ‘로나’와 ‘주코’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고 p.14 밑에서 9번째 줄에 있는 ‘서로에게 타인이기 때문에 비밀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나는 평소 비밀이 있으면 혼자 간직하고 있거나 오랜 세월을 봐오면서 내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공유했다. 근데 서로에게 타인이기에 비밀을 나눌 수 있다는 이 문장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와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이라면 나의 인간관계에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임을 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신뢰하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도 비밀을 말하고 나면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와 같다. 이 사람이 나와의 관계에서 틀어지면 이 사람에게 말했던 나의 비밀들이 온전히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타인이라면,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낮다. 만약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나와 전혀 관계없는 타인이라면 그 타인은 나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비밀이지만 주변인들에겐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긴다면 이렇게 아예 모르는 타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로나’라는 인물이 자신이 트라조돈이라는 항우울제를 2년째 복용한 것과 자신의 팔에 그어진 자살 흉터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에 잠깐 등장하는 걸인의 이야기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걸인은 <국경시장> p.24에 등장한다. 그 걸인은 다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 다리를 고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함은 대단한 자산이야. ~ 안락한 습관에서 쫓겨나 갑자기 생활인이 되어야 하다니. 그건 기적이 아니라 재앙이야.”라며 자신의 아픈 다리를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도와줬던 사람들도 과연 이 걸인과 같은 마음일까? 생각을 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 사람이 원하던 원치 않던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떤 방식으로도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걸인을 보며 긍정적이라고 바라봐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걸인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이 불편한 것을 보고 안쓰럽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한 친절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경시장> p.31 밑에서 5번째 줄에 ‘그녀는 슬픈 기억을 모두 버린 후에도 여전히 세상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여기서 그녀는 로나를 의미한다. 자신의 기억을 팔 때 자신이 자살하려고 했던 3가지 순간들의 기억을 지우고 후에는 자신이 괴로웠던 기억을 차차 지우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기억을 팔아 버렸다. 그런데도 로나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국경시장에 존재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로나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모든 기억을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나올 용기가 없어 환상의 공간에 스스로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주코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하면서 욕망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주코는 자신의 기억을 계속해서 팔고 탕진하는데 모두 사용하였다. 더 이상 팔 수 있는 기억이 없는 주코는 스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강에 뛰어들었다가 물고기들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그리고 주코를 잡아먹은 물고기들을 소년들이 잡는다. 이 잔인한 먹이사슬이 의미하는 바가 과한 욕심의 끝은 파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제일 의아했던 부분은 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이다. 남자가 병원으로 호송되는 도중에 발작으로 숨을 거두었다는 것과 <국경시장> p.35 밑에서 4번째 문장인 “노란 가루 있잖아요? 그게 눈꺼풀에 묻어 있더라고요.”라는 경찰의 말이다. 남자가 갑작스럽게 발작한 것과 눈꺼풀에 묻어 있는 노란 가루가 내화 이야기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 놨다. 외화에서 의미하는 노란 가루는 내화에서 의미하는 물고기 비늘과 같고 이 노란 가루 존재 자체는 마약이라고 추정된다. 남자는 마약에 취해서 자신이 만든 환상적인 공간에 갇혀버린 것 같다. 즉 국경시장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에서 만난 인물은 주코와 로나도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일 것 같다. 환상적인 공간 자체를 자기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원하는 것도 더 바라는 것도 없었을 것이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종이가면을 통해 드러난 것 같다. 국경시장의 문이 닫히는 과정은 서서히 약에서 깨어나는 상태를 표현한 것 같다.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 남은 노란 가루를 모두 사용하고 남자 또한 자신이 만든 국경시장에 갇힌 것 같다.

내가 국경시장에 가게 된다면 나는 나의 기억을 물고기 비늘과 바꾸게 될까? 나의 추억을 빛낼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나의 기억을 팔아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 인가?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나의 추억을 빛낼 물건으로 빛낼 추억은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추억을 얻는 동시에 나의 기억을 지워야 한다. 나는 물건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올 수 있거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물건이라면 나의 기억과 바꿀 것이다. 어느 시절의 기억을 지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작지만 잊고 살았던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가질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기억을 팔 것 같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기억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었다면 아무리 괴로운 기억이라도 팔지 않을 것 같다. 그 기억이 사라져 버려 만약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면 또 괴로운 경험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줘도 팔지 않은 나만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물고기 비늘은 책 속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물고기 비늘의 역할이 현실에선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한 역할로 작용할 것이다. 나의 기억을 파는 것은 나 자신을 지워가는 것과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로나와 주코도 욕망을 추구하다 기억을 모두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렸다.

이 소설에서 물욕과 낭비를 즐기는 로나와 주코와 달리 나는 물고기 비늘을 신중하게 사용하고 있다가 종이가면을 마주한 후로 자신의 쾌락에 물고기 비늘을 전부 탕진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바로 종이가면이다. 이 종이가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남자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도와주는 물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추억을 떠올리는 물건은 그 가격이 상당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기억의 무게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추억과 그렇지 못한 추억은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지 등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의문들이 남아있다.

나는 책을 평가할 때 그 책이 주는 여운과 그 책을 통해 계속해서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면 좋았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만의 기준에서 비춰 봤을 때 이 책이 생각해볼 거리와 배울 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이 책의 매력에 매료되어 갔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등장인물들의 결말은 딱히 좋지 않지만 자신이 한 선택에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로나’라는 주인공이 책을 읽는 내내 안쓰러워 마음이 쓰였다. 나는 로나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한다. 삶을 포기하려고 했을 정도로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이 3번이나 있으니 그녀 내면에 있는 그 아픔은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다른 인물들은 어느 아픔이 있는지 1인칭 시점인 ‘남자’의 내면마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 소설만큼 서술자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이것마저도 나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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